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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 洋 平 和 論 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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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3-17 11:10 조회2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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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 洋 平 和 論序

동 양 평 화 론서

安 重 根

 

안중근의사(安重根義士)1910214일에 사형(死刑)을 언도받은 후, 항소(抗訴)하지 않는 대신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의 집필(執筆)을 위한 시간을 허락해 달라고 판사(判事)에게 요청했고, 판사도 이에 동의했다. 安重根義士는 이 말을 믿고서, 자신의 자서전(自敍傳)인 안응칠 역사(安應七歷史)를 먼저 옥중(獄中)에서 쓰고서, 이후에야 東洋平和論 저술을 시작했다.

그러나 日本安重根義士가 자국(自國)의 전직(前職) 수상(首相)이자 정계(政界) 거물인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살해(殺害)했다는 점, 그리고 오래 살려둘수록 한반도(韓半島) 내부의 항일(抗日) 여론(輿論)과 세계적인 동정(同情) 여론이 고조될 가능성을 의식하여, 최대한 빨리 그의 死刑 집행을 앞당기려 했다. 결국 안중근 의사는 死刑이 언도된 지 40여일 후인 326일에 순국(殉國)하셨는데, 이때 동양평화론 의 초반 일부분(序論前鑑)만을 겨우 쓸 수 있었을 뿐이었다. 안중근 의사는 1. () 2. 전감(前鑑)을 쓴 직후 1910326殉國하여 東洋平和論 은 미완성(未完成)이 되고 말았다.

1. 서문(序文)

대저 합치면 성공(成功)하고 흩어지면 패망(敗亡)한다는 것은 만고(萬古)의 변함없는 분명한 이치이다. 지금 세계는 동서(東西)로 나뉘어져 있고 인종(人種)도 각기 달라 서로 경쟁(競爭)하고 있다. 일상생활에 편리한 실용기계 연구도 농업(農業)이나 상업(商業)보다는, 신 발명품인 전기포(電氣砲), 비행선(飛行船), 침수정(浸水艇) 등 모두 사람을 상하게 하고 사물(事物)을 해치는 기계에만 치우치고 있다.

청년(靑年)들을 훈련시켜 전쟁터로 몰아넣어 수많은 귀중한 생명들을 희생물(犧牲物)처럼 버려, 피가 냇물을 이루고, 고기가 질펀히 널려짐이 날마다 그치질 않는다.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실어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한결같은 마음이거늘 밝은 세계(世界)에 이 무슨 광경(光景)이란 말인가. 말과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뼈가 시리고 마음이 서늘해진다.

그 근원(根源)을 따져보면 예로부터 東洋의 민족(民族)들은 다만 문학(文學)에만 힘쓰고 제 나라만 조심스레 지켰을 뿐이지 도무지 한 치의 유럽 땅도 침입(侵入)해 빼앗지 않았다. 이는 오대주(五大洲) 위의 사람이나 짐승, 초목까지 다 알고 있는 바 이다.

그런데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가까이 수백 년 사이에 도덕(道德)을 까맣게 잊고 나날이 무력(武力)을 일삼으며, 경쟁심(競爭心)을 키워 조금도 꺼리는 기색이 없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가 더욱 심하다. 그 폭행(暴行)과 잔인(殘忍)한 해악(害惡)이 서구(西歐)나 동아 어느 곳에나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니 악()이 차고 죄()가 넘쳐 신()과 사람이 다 함께 성을 내게 되었다.

이에 하늘이 한 매듭을 짓기 위해 동해(東海) 가운데 떠있는 조그만 섬나라 日本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강대국(强大國) 러시아를 만주대륙(滿洲大陸)에서 한 주먹에 때려눕히게 하였으니, 누가 능히 이런 일이 있을 줄 헤아렸겠는가. 이것은 하늘에 순응(順應)하고 땅의 배려(配慮)를 얻은 것이며 사람의 정에 응답하는 이치이다.

당시에 만일 한(), () 두 나라 국민 상하가 일치해서 전날의 원수(怨讐)를 갚고자 일본을 배척하고 러시아를 도왔다면 일본은 큰 승리를 거둘 수 없었을 것이나 그것을 어찌 예상(豫想)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 양국 국민은 그러한 행동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일본군대(日本軍隊)를 환영하고 그들을 위해 운수(運輸) 치도(治道) 정탐(偵探) 등의 수고를 아끼지 않고 힘을 기울였다. 이것은 무슨 이유인가.

거기에는 두 가지 큰 사유(思惟)가 있었다. 일본과 러시아가 개전(開戰)할 때, 일본천황(日本天皇)의 선전포고문(宣戰布告文) 중에 東洋平和를 유지하고 대한독립(大韓獨立)을 공고(鞏固)히 한다. 했으니. 이 같은 대의(大義)가 청천백일(靑天白日)의 빛보다 , 인사는 지혜로운 이나어리석은 이를 막론하고 일치동심(一致同心)해서 복종(服從)했음이 그 하나이다. 또한 일본과 러시아의 다툼이 황백인종(黃白人種)의 경쟁이라 할 수 있으므로 지난날의 원수졌던 심정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고 도리어 큰 하나의 애종당(愛種黨)을 이루었으니 이도 또한 인정의 순리라 가히 합리적(合理的)인 이유의 다른 하나이다.

통쾌(痛快)하도다! 하도다! 수백 년 동안 행악하던 白人種의 선봉(先鋒)을 북소리 한 번에 크게 부수었으니 가히 천고(千古)에 희귀(稀貴)한 일이요 만방(萬方)이 기념할 자취이다. 당시 韓國淸國 양국의 뜻있는 이들이 기약 없이 함께 기뻐해 마지않는 것은 일본의 침략이나 일을 해쳐나감이 東西洋 천지(天地)가 개벽한 뒤로 가장 뛰어난 대사업이며 시원스런 일로 헤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슬프도다! 천만 번 의외로 승리(勝利)를 거두고 개선(凱旋)한 이후로 가장 가깝고 가장 친하며 어질고 약한 같은 人種韓國을 억압하여 조약(條約)을 맺고, 만주(滿洲) 장춘(長春) 이남의 조차(租借)를 빙자하여 韓國을 점거하고 말았다. 세계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의심이 홀연히 일어나서 일본의 위대한 명성(名聲)과 정대한 공훈(功勳)이 하루아침에 바뀌어 만행(蠻行)을 일삼는 러시아보다 더 못된 나라로 보이게 되었다.

슬프다! 용과 호랑이의 위세로서 어찌 뱀이나 고양이 같은 행동을 한단 말인가? 그와 같이 좋은 기회를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안타깝고 통탄(痛嘆)할 일이로다.

동양 평화와 韓國 獨立에 대한 문제는 이미 天下萬國 사람들 이목에 드러나 그들은 금석(金石)처럼 믿게 되었고 , 두 나라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음에랴! 이러한 사상은 비록 천신(天神)의 능력으로도 소멸시키기 어려운 것이거늘 하물며 한두 사람의 지모(智謀)로 어찌 말살(抹殺)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환난(患難)東洋 사람이 일치단결해서 극력 방어(防禦)함이 최 상책(最 上策)이라는 것은 비록 어린아이일지라도 익히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무슨 이유로 日本은 이러한 대세를 돌아보지 못하고 같은 인종인 이웃나라를 치고 우의(友誼)를 끊어 스스로 방휼지세(蚌鷊之勢)를 만들어 어부(漁夫)를 기다리는 듯하는가. 이로써 한 청 양국인의 소망은 크게 깨져 버리고 만 것이다.

만약 日本이 정략(政略)을 고치지 않고 핍박(逼迫)만 날로 심하게 한다면, 차라리 다른 인종에게 망할지언정 차마 같은 인종에게 욕()을 당하지 않겠다는 소리가 , 두 나라 양국인의 폐부(肺腑)에서 용솟음쳐 상하 일체가 되어 스스로 백인의 앞잡이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형세이다.

그렇게 되면 東洋의 수억 黃人種 가운데 수많은 뜻있는 인사와 정의로운 사나이가 어찌 앉아서 수수방관(袖手傍觀)하며 동양 전체가 까맣게 타죽는 참상(慘狀)을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옳겠는가? 그래서 나는 東洋平和를 위한 의전(義戰)을 하얼빈에서 개전하고, 담판(談判)하는 자리를 여순(旅順)으로 정했으며, 이어 東洋平和 문제에 관한 의견(意見)을 제출하는 바이다.

여러분의 눈으로 깊이 살펴보아 주기 바란다.

1910庚戌 2

大韓國人 安重根

旅順獄中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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