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곡서원 연혁

조곡서원(早谷書院) 연혁(沿革)


 

1783년(正祖 7)에 가선대부(嘉善大夫) 중추부사(中樞府事) 안여송(安如松)이 영남의 유림(儒林) 대표 등과 함께 서원 창건을 예조(禮曹)에 정소(呈訴)하여 1794년(正祖 18)에 경산 자인 조곡 성잠산(聖岑山) 아래에 서원을 건립하여 문충공(文忠公) 오성군(鰲城君) 안우(安祐) 선생과 문정공(文靖公) 고은(皐隱) 안지(安止) 선생의 위패를 봉안(奉安)하여향사(享祀)를 받들고 선비들이 글을 읽었다.

1798년(正祖 22) 10월에 경상도 유생(儒生) 서린복(徐麟復), 김정술(金鼎述) 등이 서원승호(書院陞號) 사액(賜額) 청원문(請願文)을 예조에 올리고 자인 현감(慈仁縣監) 오천(烏川) 정일태(鄭日泰)가 조곡 서원(早谷書院) 편액(扁額)과 충현사(忠賢祠) 사액(祠額)을 썼다.

1868년(高宗 5) 서원 훼철령(毁撤令)에 따라 서원을 창건한 지 75년만에 헐리고 1869년(高宗 6) 10월에 헐린 부재(部材)로 지금의 서원 자리에 재실(齋室)을 지어 상경재(尙敬齋)라 하였다.

 

1900년(高宗 37) 봄 서원이 헐린 지 32년 만에 재실 뒤에 사당을 지어 고은 안지(皐隱安止) 선생의 별묘(別廟)로 받들고 1934년부터 다시 석채(釋菜) 의식을 행하였으며, 1950년에 서원 정문인 향도문(嚮道門)을 건립하고 다음해에 동재(東齋)를 건립하는 등 서원을 재건・ 중수(重修)하여 조곡 서원의 옛 편액을 다시 내걸고 1962년 2월 중정(中丁)에 복향(復享)하고봄・가을로 제향(祭享)을 받들어 왔으나 지금은 2월 중정(中丁)에 춘향(春享)만 봉행(奉行)한다.

 

1988년 8월 서원을 개방하고 안문(安門)의 뿌리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탐진 안씨 전국 청소년 보학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1994년 3월 서원 창건 200주년을 맞아 서원 앞 광장에 “조곡서원 창건 200주년 기념비” 및 서원 옛터에 “조곡서원 유허비”를 세우고 고유제(告由祭) 및 기념행사를 가졌으며 「조곡서원지」를 간행하여 서원 방문자 등에게배포하여 서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997년 “문화유산의 해”를 맞이하여 경상북도와 경산시의 지원으로 퇴락(頹落)한 서원의 담장을 재건립하고, 1998년 11월 200여 년 간 서원에 비장(秘藏)해 왔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필사본을 학계에 공개하였다. 2000년 11월 26일(동짓달 초하루) “고은 안지 선생 불천위(不遷位) 봉안 100주년”을 맞아 서원 당호(堂號)인 「홍교당(弘敎堂)」과「문정 고은공 부조묘(文靖皐隱公不祧廟)」 현판을 새로 걸고, 부조묘에 고은 안지 선생의 영정(影幀)을 봉안하고 고유제를 봉행하였다.

 

2005년 5월 서원 건물 지붕을 동(銅)기와로 개수하고, 충현사(忠賢祠) 및 고은 선생 신도비각(神道碑閣)의 단청(丹靑)을 다시 하는 등 서원을 중수하고, 관리사(管理舍)와 관리사 대문을 새로 지었다.

 

서원 강당[弘敎堂]에는 서원창건기(書院創建記)・복향기(復享記)・상경재기(尙敬齋記)・상경재 원운(原韻)을 비롯하여 현감 조유승(曺有承)・청주 한동유(韓東愈)・문소(聞韶) 김헌주(金獻周) 등 당대 학자들의 시판(詩板)과 소수 서원을 비롯하여 전국에 흩어져 있는 선대의 유적을 사진 액자로 게시하고 있으며, 서재(西齋)인 계몽재(啓蒙齋)에는 족보・문집등의 문헌(文獻)을 소장(所藏)하여 열람(閱覽)토록 하고 있다.

 

서원에 비장(備藏)해 왔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필사본과 『고은문집(皐隱文集)』 초간본 및 조곡 서원 『향사홀기(享祀笏記)』 조곡 서원 향례(享禮) 청원서(請願書) 등은 경산시립 박물관에, 『고은문집(皐隱文集)』 목판(木版) 52점은 한국국학진흥원에 각각 위탁(委託) 보관.관리 중에 있다.

 

조곡서원(早谷書院) 전경(全景)

조곡서원(早谷書院) 강당(講堂)

jg.jpg

gd.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