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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곡 서원은 우리의 비조(鼻祖) 오성군(鰲城君)의 위패를 모신 사우이며, 사세(四世)에 이르러 고은 문정공 선생(皐隱文靖公先生)을 배향하기에 이르렀다. 두 분 선조의 공훈ㆍ업적ㆍ문장ㆍ지조ㆍ절개는 선배들의 저술에 지극하고 극진하니, 이제 또 다시 들추어 말할 게 없다. 이에 사림(士林)의 추모하는 마음은 더욱 깊어 경건히 받들어 올리는 성대한 제례 의식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무도한 세상을 만나 선비들의 기강이 쓸쓸하게 되었고 조정의 훼철령은 온 나라에 미치게 되어 몇 이랑의 서원이며 사우는 어느덧 황폐하게 변하였다. 이에 유허지를 걷노라면 슬픔과 비탄이 나올 뿐이었다.
그러나 끝내 여론이 일게 되어 서원을 중수하였고, 수십일 만에 준공에 이른 것이다. 갑술년(1934) 중춘에 삼가 창주 서원의 고사를 따라 제례를 봉행하여 조금이나마 사모하는 마음을 표하면서 하늘이 안정되고 황하수가 다시 맑아진 그날 제향을 올리려고 뒤로 미뤄왔던 것이다. 이에 많은 선비들은 움추렸던 마음을 펴게 되었고, 후손들의 정성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에 서원의 흥패 전말을 삼가 기록하여 사모하고 추앙하는 정성을 표한다.
저옹 엄무(著雍閹茂) : 서기 1958년(무술) 8월 문정공(文靖公) 15대손 효곤(效坤)은 손을 씻고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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早谷書院重修記
早谷書院我鼻祖鰲城君俎豆之所而傳四世至聖朝文靖公皐隱先生之配享也兩祖之勳業德行文章志節先輩之撰述至矣盡矣今不更擧而士林之追慕愈深虔奉縟儀者巳久而世値元二士紀索莫毁撤之令遍及域中則數畝院宇便歸蒼莽而趨退遺墟者咨嗟感歎與議竟發重修院宇經數旬而功告訖乃於靑狗之仲春謹依滄州古事行舍菜之禮而粗伸羹牆之寓擬竣天定河淸之日要爲復享則僉儒之含鬱伸矣後裔之茹誠遂矣玆庸謹記院宇之廢興顚末以資慕仰之忱云爾
著雍閹茂仲秋文靖公十五代孫效坤盥手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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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곡 서원은 서기 1794년 성잠산 아래에 세운지 75년 만에 철폐령으로 헐리고 서기 1869년 이곳에 옮겨 지은 지 137년이 지나 노후되어 누수의 염려가 있어 탐진 안씨 종중 회장 昞瑀님과 서원보존위원장 明旭님이 종중의 뜻을 모아 서기 2005년 5월에 銅기와로 지붕을 올리고 사당과 비각을 단청하고 관리사를 새로 지어 보존토록 하였다.
서기 2005년 11월 30일 조곡 서원 원장 廣州 安秉杓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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